국보투수 선동열이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1980년-1990년대의 히어로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선수는 해태 타이거즈에서 전설적으로 활약을 한 이후 일본진출, 그리고 감독으로서의 행보까지 한국 야구의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의 인생 타임라인과 은퇴후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또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어떠한 논란이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무등산폭격기 선동열
(출처: 연합뉴스)
야구인 선동열은 대한민국 야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한명입니다. ‘투수는 선동열처럼’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별거 아닌 말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만큼 선동열을 표현한 말도 없을 것입니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하여 무수히 많은 투수들이 마운드에 섰고 모든 힘을 다해 공을 던져왔지만 최고의 투수를 한명 뽑으라면 여전히 선동열은 압도적 1위의 올라있습니다. 1985년에 해태 타이거즈에서 프로로 데뷔해 1999년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은퇴 후 지도자 생활 그리고 그에 대한 논란까지 알아봅시다.
선동열의 출생 그리고 데뷔
선동열은 1963년 1월 10일, 전라남도 광산군(현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야구에 매우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야구 명문인 광주제일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에 소속되어 이미 프로데뷔 전(제1회 세계청소년야구대회 초대 우승 및 MVP) 아마추어 최고의 투수로 자리 잡았다죠.
198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 1차지명으로 해태타이거즈에 입단하였고 당시에 한국화장품 야구단과의 이중 계약 파문으로 큰 논란이 있었지만 후반기부터 출전할 수 있었고 평균자책점 1위(1.70)와 7승 4패 8세이브를 기록하며 첫 프로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신인으로서 엄청난 성적은 맞지만 후반기부터 뛴 영향으로 인해 입단동기 이순철이 신인왕을 가져갔습니다.
해태타이거즈 투수 선동열
1985년부터 1995년까지 해태타이거즈에서 활약한 선동열은 압도적인 기록들을 남기게 됩니다. KBO 리그 통산 146승 40패, 132세이브, 통산 평균자책점 1.20 으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고 7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1985-1991), 0점대 평균자책점 기록 3회(1986, 1987, 1993) 등 다수의 타이틀 수상 및 해태타이거즈 6회 우승을 일궈내 명실상부한 국보급 투수의 반열에 올랐죠.
이러한 존재감으로 ‘국보투수’, ‘무등산 폭격기’ 라는 수식어가 그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위력적인 직구와 KBO 역대 최고 구종으로 꼽히는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한국 프로야구를 지배하였고 과거의 기록이라 평가절하되는 부분도 있지만 현 시대 관점으로 보더라도 매우 뛰어난 투수라는 것은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나고야의 태양 선동열
(출처: OSEN)
선동열은 1996년 일본 프로야구팀 주니치 드래곤스로 임대 이적해 대한민국 최초의 해외진출 및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한 최초의 KBO 투수로 기록되었습니다. 해외리그 진출은 당시 한국 프로야구 정책 및 분위기 상 쉽지 않았고 선수의 소유권을 가진 구단의 허락이 없이는 불가능 한 것으로 이러한 최초의 기록이 현재 선수들의 해외진출에 물꼬를 터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죠.
일본진출한 선동열 그리고 은퇴
일본에서 1996년부터 1999년까지 4년간 리그 정상급의 투수로 활약했지만 노쇠화로 인한 에이징커브도 뚜렷이 나타났던 시절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진출 첫해 5승 4패, 24세이브, 평균자책점 0.98을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으로 일본리그 적응을 시작했던 그는 두번째 시즌인 1997년 2승 3패, 38세이브, 평균자책점 1.28을 기록하며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자리 잡았었습니다. 이때 선동열 성인 선을 영어로 마킹한 SUN이 태양이란 뜻을 가져 팬들이 선수에 대한 존경을 담아 주니치 드래곤즈의 연고지인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의 태양이란 멋진 이명도 만들어 냈었죠.
1998년 역시 지난해보다는 부족하지만 훌륭한 성적으로 마무리했던 선동열은 1999년부터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였고 99년 시즌을 끝으로 위대했던 선수생활의 은퇴를 결심하게 됩니다. 일본리그에서의 훌륭했던 성적은 대한민국의 야구의 위상을 전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해냈고, 그가 선수생활 중 한국과 일본 양쪽 리그에서 수상한 수많은 상들만 확인해봐도 얼마나 대단했던 선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주요 수상 기록
선동열의 선수시절 주요 수상기록을 살펴보면 1986년 KBO 리그 MVP 수상입니다. 이어 1986년, 1989년, 1990년에 받은 KBO 리그 다승왕, ERA 1위, 탈삼진왕 수상 있습니다. 1986, 1990년에 받은 KBO 리그 골든글러브 수상(투수 부문)도 빠질 수 없죠. 1997년에는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세이브왕 수상한 바 있습니다.
선동열 대표팀 감독 시절논란
(출처: 한국경제)
병역혜택자의 부적절한 선발
2017년 7월 국가대표팀 감독이 선임되어 2018년 아시안 게임을 지휘했을 때 병역 혜택과 선수 선발 과정에서 공정성 문제로 큰 논란이 된 적 있습니다. 특히, LG 트윈스의 투수 오지환 선수는 당시 성적이나 경기력보다는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한 특혜성 선발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었습니다. 선수 선발 기준은 미공개였고 선동열 감독이 병역면젤르 위해 특정선수를 도와준것이 아니냐는 국민청원도 올라왔었습니다. 여론의 압박으로 인해 위원회에 출석해 해명한 선동열은 공정한 선발이였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대중은 여전히 실망했죠. 아후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선동열 감독은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고 합니다.
야구 지도자 선동열 근황
선동열 감독의 조언
선동열 감독은 한화 이글스 류현진과 SSG 김광현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건냈습니다. 그는 두선수는 나도가보지 못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했었으며 더 뛰어난 후배이기 때문에 두 선수의 대결은 의미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동열은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감독,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한 이후 직접 팀을 이끄는 감독 역할을 2018년 이후 수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KT위즈에서 원포인트 레슨을 행사로 한 적은 있습니다.
선동열 아들 선민우, 훈남 골프 프로선수
(출처: 네이트 뉴스)
야구 레전드 선동열의 아들인 선민우는 프로 골프선수입니다. 그는 tvN예능 ‘골벤져스’에 등장했습니다. 조세호는 단번에 굉장히 닮은 분이 있다며 지난주 생일이 아니였냐며 선민우를 당황시켰고 이후 선민우가 선동열의 아들인 것이 드러나자 출연자들은 크게 환호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저보다 더 잘 치실때도 있고 상대에 맞춰 타수를 맞춰주시기도 한다며 공놀이는 다 잘하신다고 추켜세웠습니다.